천체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곳이 천문대다. 천문대는 주요 목적에 따라 천체 물리학을 위주로 하는 천문대와 위치 천문학을 위주로 하는 천문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천체 물리학 위주의 천문대는 천체 물리학의 연구를 위하여 근년에 더욱 두드러지게 발달해 온 분야이며, 이에 따라 천체물리 천문대는 모두 망원경의 거대화와 정밀화를 다투고 있다. 이 분야의 천문 연구에 가장 비중을 많이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며, 유럽의 여러 나라도 독자적으로 또는 국제협력의 형태로 대 망원경 건설을 발전시키고 있다.
위치 천문학 위주의 천문대는 위치 천문학 관계의 망원경은 자오 환을 우선으로 하고, 천정의, 사진 천정 통, 자오의, 아스트롤라베 등 사진 굴절 적도의에 의하여 항성의 고유 운동과 시차, 태양계 천체의 운동, 인공위성 관측 등도 포함된다. 위치 천문학 단독 목표로 하는 천문대는 표준시의 결정, 보시 등의 필요에서 내용과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각국에 적어도 1개소는 있다. 일반적으로 천문학 천체를 관측하는 일반적인 천문대의 입지 조건은 도시의 조명 등화로부터 격리되어 있어야 하며, 지반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늘의 투명도가 좋고, 대기의 흔들림이 적은 곳으로 정해진다. 각국이 모두 공업의 발달과 도시의 팽창이 두드러지므로 대도시의 정중앙이나 근교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 천문대에서는 관측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부터의 전통을 갖고 있으나, 허스트 몬 소로 옮겼고 여전히 그리니치 천문대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파리 천문대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지금은 모든 돔이 텅 비어 있고 망원경은 상 미셸로 옮겨졌다.
고대의 천문대로 먼저 동아시아의 천문대 중 한국의 천문대는 고대에 대부분 주변의 건물이나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거주지역 부근에 세워졌다. 보통 일관이나 역관에 의해 운영되었고, 태양과 행성, 별의 위치나 운행, 유성, 혜성 등 천체의 모양을 관측하여 보고하였다. 고대의 천문대로는 참성단, 첨성대, 관천대, 대간 의대가 있다.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제단으로 고조선 시대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조선 시대에는 천문관측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으로 두악산이라고도 부르며,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고 한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마니산이 그만큼 정결하며 장엄하고 뛰어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강도는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로 되어 있고 문물이 발달하였으며, 마니, 혈구 등 하늘과의 인연이 깊다고 예로부터 일러 왔다.
조선시대 안정복은 고려사 지리지를 인용하여 마니산의 참성단은 세속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단이다 하고, 전등산은 일명 삼랑성인데, 세속에서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쌓은 것이다. 참성단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단 위의 사면이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석단이라 한다. 제단은 원석을 다듬어서 쌓았다. 지천 태괘의 모습처럼 천지의 교류를 위하여 아래는 하늘을 나타내는 동그란 모양을, 위는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모양을 하였다. 제단 오른쪽 아래의 나무 밑에는 샘이 있는데, 현재는 뚜껑을 만들어 닫아 놓았다. 뚜껑의 틈으로 샘 안쪽을 들여다보아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참성단 제례에 관해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1264년 원종 5년 6월 고려 원종이 마리산참성에서 초제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초제는 성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초기에 소격서에서 마니산 초제를 담당하였으나 중종 때 소격서가 격파되면서 국가차원의 제사도 폐지되었다.
마니산 참성단은 민족의 성지로 주목받은 것은 대일항쟁기 국권 회복과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 민족의 시조로 단군을 재인식하면서 였다. 광복 후 개천절이 부활하면서 참성단은 개천절 경축 행사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 강화도는 연륙 되어 쉽게 갈 수 있다. 참성단 또한 등산로를 정비하여 가파른 곳에 계단을 만들어 편리하게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문헌 비고에는 고려 고종 46년에 교서랑 경유가 말하기를 대궐을 마니산에 세우면 가히 나라의 복조를 늘게 하리라. 함에 명령하여 이 궁을 그 산 남쪽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639년 인조 17년에 개수 축하였으며, 1700년 숙종 26년에 또 개수 축하여 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에 동녘 땅 수천 리 전체를 둘러서 강도가 보 장지 중지가 되고, 강도 수백 리 전체를 둘러서 마니가 으뜸가는 명산이다.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이른바 참성단이다. 세상에서 전하돼 단군께서 쌓아 제단으로 하여 한얼께 제사 지낸 곳이라 하니, 돌이켜 보건대 오랜 연대가 흘러 비바람에 깎이고 허물어져서 서북쪽 태반이 무너지고 동쪽 층계가 또한 많이 기울어져서 선두포 별장 김덕하와 전등사 총 섭 승 신묵이 주로 맡아 고쳐 쌓으니 20일 만에 일을 마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참성단이라는 명칭이 붙은 내력과 여러 번 고쳐 쌓은 일을 알 수 있으며, 제천단에 대한 선인들의 뜻이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여러 번 고쳐 쌓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참성단 오른쪽 바로 아래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소사나무로, 2009년 9월 16일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된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이다. 수령은 약 15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소사나무 종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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